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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장례라면 예수님의 장례를 모범으로 삼아야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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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9-14 18:22 조회 10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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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사복음서가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마 27:57-60)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막 15:43-46)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눅 23:50-5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요 19:38-40)

예수님의 무덤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준비해 놓은 것으로 팔레스틴에서는 바위를 파서 그 속에 시신을 안치하는데 크기에 따라 여러 사람을 안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을 부자라고 소개하는데 사 53:9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는 예언의 성취로 볼 수 있습니다.

로마법에 의하면 십자가에서 처형된 사형수의 경우 그냥 방치하는 것이 관례이나 시신을 장사지내겠다는 청원이 들어올 경우 허락해 주는 것도 관례였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사회적 지위도 있고, 빌라도 역시 예수님의 무죄를 주장한 까닭에 순순히 시신을 내어주었고 정한 세마포로 예수님의 시신을 싸서 무덤에 넣고 돌을 굴려 막았다고 했습니다.

다만 요한복음에는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섞은 향품과 함께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로 쌌다고, 그것이 유대인의 장례법이라고 부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몰약과 침향은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장례를 기독교 장례의 모델로 삼을 경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수 있겠습니까? 팔레스틴의 경우 우리와 다른 환경 때문에 바위의 속을 파서 장사를 지냈다고 했는데 이는 우리의 실정에는 맞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죽음 뿐 아니라 나사로의 죽음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세마포로 시신을 싸매는 것이 팔레스틴의 장례법이며, 몰약과 침향 섞은 향품을 시신에 두는 것 역시 팔레스틴의 장례법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기독교 장례는 죽음보다 부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 장례에서는 입관이나 발인 등의 절차 등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기독교를 박해하던 모습에 대해 「로마인 이야기」에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야수의 모피를 뒤집어쓰고 들개 떼에 물려죽었다. 다른 이들은 로마 시대의 일반적인 처형법이었던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나머지는 밤의 구경거리로 남겨졌다. 땅에 박은 말뚝에 한 사람씩 묶은 다음, 산 채로 불을 붙이는 것이다. 활활 타오르는 인간 기둥들이 관중석에서 마른침을 삼키는 시민들의 얼굴을 비추었다.

동물들에게 물려죽거나 불에 타서 죽은 시신의 경우 아무 것도 남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은 천국에서 가장 큰 상급으로 보상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자리로 나아가는 자들은 죽음을 넘어선 부활과 영생을 바라보며 나아갔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세마포로 싸매고 묶는 것보다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묶는 것은 지양(止揚)하는 것이 기독교 장례로서는 더 나은 양태(樣態)라고 여겨집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장례는 팔레스틴의 장례법을 따른 것일 뿐 기독교 장례가 따라야 할 모범이라 할 수 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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